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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밀레니엄 힐튼 호텔을 지나 남산으로 올라가다보면 아무 것도 없을 것만 같은 곳에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벽은 거푸집을 떼어난 뒤 칠을 하거나 덧씌우지 않은 채 양회 특유의 투박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면을 가득 채운 3층 높이의 유리벽 뒤로 드러나는 차가운 청백색과 따스한 황색의 불빛은 그것대로 또 외벽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끈다.

하나의 유리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저쪽과 이쪽은 전혀 다른 세계인 것만 같다. 하루 일과에 지친 태양은 일찍도 산 너머로 쉬러 가고, 어둠과 추위 만이 지배하는 이쪽과 여유로워 보이는 저쪽의 사람들 모습은 너무 이질적이다. 평범하지 않아서 더 매력적인 풍경. 밖으로 풍겨 나오는 그 특별함으로부터 이미 적지 않은 출혈을 예상할 수 있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작고 촘촘한 거울들과 나이트 클럽에서 볼 수 있는 은빛으로 빛나는 구가 하늘에 달린 작은 공간은 잠시 바깥 세상을 잊게 만든다.  지하층, 2층, 4층 대신 적혀 있는(층간 개념이 다소 모호하다) 'hell' , 'earth', 'heven' 버튼은 엘리베이터가 나를 천상의 세계로 데려다 줄 것만 같다.

모던한 빛의 세계는 신전을 연상케 한다. 창밖에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천국의 문이 열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건 모던한 빛의 세계다. 2층 대리석 느낌의 바닥(정말 대리석인지도 모르겠다)에서도, 열린 공간 위로 이어져 있는 상부층의 바닥에서도 은은한 빛이 감돈다. 여기에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초와 몇몇 곳에 장식된 초들이 만들어 내는 황금색 빛이 이 공간을 비추는 조명의 전부다. 어둡지만 조명과 벽체가 일체화 되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naos nova' (새로운 신전)라는 이름에 걸맞다. 직원들이 하늘하늘한 드레스라도 입고 있었다면, 정말 신들의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느꼈으리라.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찾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어둠에 잠긴 도시에 밝혀진 점점의 조명은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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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만 놓고 본다면 미슐랭가이드의 별 세개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슐랭 가이드 대한민국 판이 만들어 진다고 가정 할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 내놓은 음식을 맛보는 순간 naos nova는 천국이 아닌 지옥이 된다.

'이정도라면 음식도...' 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빵을 먹고 나서 나온 차가운 전체요리는 베이컨을 감싼 딸기다. 베이컨에 딸기라니, 이건 한순간에 기대를 무너뜨리는 맛이다. 폼생폼사인가. 베이컨과 딸기의 맛은 전혀 조화되지 않는다. 두번째 요리는 감자 슬라이스를 얹힌 고로케. 내가 왜 여기서 고로케를 먹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천상에서 먹는 고로케라니...더군다나 따뜻한 요리를 차가운 접시에 그대로 내와 다 먹기도 전에 음식이 식어 버렸다. 세번째 코스는 단호박 스프. 스프에 생크림 혹은 계란을 섞은 듯 부드럽다. 부드러움이 지나쳐 단호박의 맛을 느끼기 힘들다. 이어지는 참깨와 크래송 샐러드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그래도 메인요리만 맛있다면 다 용서하리라. 메인요리는 미디엄으로 구운 꽃등심이다. 뜻밖에도 따뜻한 접시에 담겨나온 요리를 보고 안도감을 느낀 것도 잠시, 향기가 심상치 않다. 소금과 후추로 간 한 날것을 기대했던 터라 소스가 뿌려진 등심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시큼한 맛이 강한 소스가 고기의 맛을 죽여버리고 있다.

직원을 불러, 소스가 뭔지 물었다. 직원은 무슨 소스인지 대답은 안하고, "한국적인 입맛에 맞도록 만든 것"이라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무슨 소스인지 몰랐으리라. "원래 이렇게 소스를 바르냐"는 물음에 "그렇다고"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불만스럽지만 원래 그런 요리라고 하니, 멋 모르고 요리를 주문한 내 자신을 탓할 밖에.

분위기 좋은 곳을 찾는다면 'naos nova'만한 곳도 없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면 얘기가 다르다.

나를 정말 실망시킨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무난한 후식과 차를 마시고 레스토랑을 나서려고 할 때, 아까 그 직원이 "주방에서는 고기에 소스를 뿌린 일이 없다"고 전했다. 그럼 내가 먹은 것은 뭐란 말인가?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허탈했다. 차라리 나에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런 경우라면 주방의 말을 그대로 전할 것이 아니라 사과하는 것이 합당하다. 나는 잘못 만들어진 요리를 먹은 것인가. 아니면 직원이 사실 관계를 잘 못 전한 것인가. 어느 쪽이든 고객에게는 불쾌한 일이다.

분명 naos nova의 인테리어는 최고 수준이며, 저가 와인에서부터 수백만원을 호가가는 다양한 와인리스트도 훌륭하다. 가격대도 삼청동의 와인바와 비슷한 수준으로 비싸지 않다. 확실히 재고만 있다면 충분히 즐겁게 와인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레스토랑으로서의 naos nova는 이대로라면 추천할 수 없다. 베이커리를 제외한 음식과 접대예절은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이만한 가격에 이곳보다 더 훌륭한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은 서울에 널리고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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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보이는 입구로 들어가면 맛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맥도날드 가면 안된다. 외국 여행가서 맨날 먹는 음식 먹지 말자. 왜 유럽이나 미국까지가서 맛도 없는 한국식당을 가는가. 장기체류자라서 향수병이 난 경우가 아니라면 음식도 여행의 일부분으로 즐기기를 권한다.

작은 가게 한 켠에서 초밥을 먹고 있는 남녀. 보통의 경우라면 여자가 먼저 눈에 들어올텐데 남자의 모습이 동공에 확 꽂히는 까닭은 서양사람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초밥을 먹는 서양 사람을 보긴 했지만 실제로 먹고 있는 광경은 처음이다. 서양 사람들에게 날 것이 낯선 음식이듯 날 것을 먹고 있는 서양인의 모습은 아직도 동양인인 나에게 생경한 풍경이다.

최근 식당,호텔 안내서로 유명한 미슐랭 가이드 도쿄판이 발행됐다는 소식이 떠오른다. (실제 발행된 시점은 내가 여행을 다녀온 뒤다) 무려 식당 8곳이 별 셋을 받았고(파리 10곳, 뉴욕 3곳), 그 중 두군데가 초밥집이다. 미슐랭 가이드 도쿄판을 둘러싸고, "일본 음식에 대해 너무 점수가 후한 것 아닌가", "심사위원 5명 중 3명이 유럽사람이라는데 동양 음식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졌나" 등등 논란이 많았던 모양이다. 평가의 공정성 여부는 제쳐두고 서양인의 동양요리, 특히 일본 요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만은 사실인 것 같다. 저렇게 내 앞에 앉아 초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파란눈의 사나이도 있는 걸 보니.

사족이지만 공정성 논란에 대해 미슐랭 측은 파리엔 2만여개, 뉴욕엔 2만3000여개의 식당이 있지만 도쿄에는 16만개에 달하는 식당이 있다는 논리를 폈다. 그렇다고 설마 16만개의 식당을 다 가보고 평가했을리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별을 받지 못한 더 훌륭한 식당들이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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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자와 쿠라부 (北澤倶楽部)의 내부 모습은 보통 회전초밥집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분위기는 별로지만 음식의 맛은 훌륭하다. 사진 찍는게 쑥스러운지 요리사는 여러번 찍어도 절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미슐랭 가이드가 별 세개를 준 82세 장인이 운영한다는 '스시야바시 지로'에 가 보지 못한 관계로 맛을 비교할 순 없겠지만, 내가 방문한 가게도 맛에서는 결코 부족함이 없다. 친구를 따라간 터라 가게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선입견 없이 초밥을 맛봤는데, 한국에서 먹어본 수십만원짜리와 견줘봐도 손색이 없다. (단, 참치 뱃살은 다소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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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에 위치한 장인 스시집의 1인분 가격이 1만8000엔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접시에 몇백엔 밖에 안하는 이쪽이 가격면에서는 완승 아닐까. 가게 이름은 '키타자와 쿠라부 (北澤倶楽部)' 신주쿠 본점. 보기에는 허름한데다가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 체인점이기까지 한데, 알아보니 창업 100년 역사에 3대째 가업으로 스시를 하고 있는 곳이다. 아사히 TV에서 선정한 100대 스시 맛집 중 2위를 차지한 경력도 있다고 한다.
 
한국의 여행안내 책자에도 맛집으로 소개가 됐는데, 이건 상술이라고 해야하나? 한국 말은 안 통해도 한국어로 된 메뉴판이 있으니, 일본어 몰라도 초밥 먹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전갱이, 도미, 정어리, 고래, 고등어, 청어알, 참치, 넙치....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느낌. 거부감없이 살아있는 맛을 두 사람이 배부를 때까지 보고도 불과 몇만원밖에 나오지 않다니, 도쿄에 간다면 꼭 들러볼 것을 권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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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하실 분들을 위해 지도를 첨부한다. 신주쿠역 남문으로 나와 요도바시 카메라를 찾아가면 된다.
사진제공은 구글어스 ^^

◇앞쪽이 안창살, 뒷쪽 고기가 갈빗살이다


나는 고기를 무척 좋아한다. 건강을 생각하면 또 다이어트를 생각하면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쉼 없이 움직이는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서 끈기 있게 씹히며 혀에 부드럽게 감기는 그 느낌을 멀리할 수가 없다. 특히나 나는 肉食 중에서도 陸食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소고기다.

소고기는 특별히 양념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에서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흘러 나오는 선홍빛 육즙은 혀에 고기를 밀착시켜 그 맛을 더해준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평소에도 육식 위주의 식단을 즐기는데 따로 또 기회를 만들어 고기를 씹어야 직성이 풀리니 혹시 '육징'(자꾸 고기를 먹고 싶은 병증)은 아닌가 모르겠다.

몇일 전에는 아내와 함께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인터넷 검색 끝에 여의도의 유명 고깃집인 ‘주신정’을 점찍었다. 탤런트 김종결이 운영하는 집이라고 하는데 본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름만으론 얼굴이 도대체 떠오르지가 않는다. 하지만 얼굴을 보면, ‘아! 이사람’하고 머릿속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가게 앞 유리 벽면에는 도배한 것처럼 주신정 관련 기사가 붙어 있고 테이블이 가득 차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어림잡아 테이블이 50개는 되는 듯한데 그래도 손님들이 다 앉지를 못하니 정말 장사 잘 되는 집이다. 이제 더 이상 홍보는 필요 없는 이름난 집이 된 듯하다.

차례를 기다려 자리를 잡고 갈빗살과 안창살을 주문했다. 안창살은 소의 횡경막 부위로 겉보기엔 다른 고기와 비슷한데 굽고 나면 짙은 갈색을 띄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갈빗살은 반대로 씹는 맛이 있다. 먹어본 결과 유명함에 걸맞는 ‘A+’는 도저히 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맛이 없다는 건 아니다. 여느 고깃집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 정말 맛있는 고기 판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기에는 부족한 그런 맛이다. 솔직히 갈빗살은 두껍게 썰려 굽기 어렵고 질기다는 느낌도 좀 있었다. 맛만 놓고 본다면 B+ 정도다.

◇불판 골을 따라 계란을 둘러 익혀 먹는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고 손님으로 식당이 미어터짐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는 괜찮다. 불판에 둘러주는 계란부침도 특이하고 말 하지 않아도 부족한 야채가 있으면 갖다 주고 덤으로 양(소 내장)도 맛볼 수 있다. 저녁 시간 피크 타임, 힘든 때 일 텐데도 종업원들이 성질을 부리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일부 잘 나간다는 식당의 경우 손님이 왕이 아니라 종업원, 주인이 왕인 경우를 종종 본다.) 마지막 후식도 알아서~ 잽싸게 갖다 준다. 서비스는 A. +를 더하고 싶었으나 주인이 식당을 나가다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는 척도 하지 않는 무뚝뚝한 태도에 감점했다.

추가정보 : 냉면은 절대 비추! 5000원짜리 실을 씹는 기분이다. 열무 김치에 비벼먹는 1000원짜리 밥이 100배 낫다. 고기 가격은 2만1000~2만2000원. (02)784-6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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