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촛불 시위와 관련 시위자들의 견해를 "완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타임의 보도가 나간 6일 대한민국 서울 세종로에는 촛불 시위 시작 이래 최대 인파가 운집, 쇠고기 수입 재협상과 정권 퇴진을 외쳤다.
 
 이날 이 대통령은 세종로에 모인 수만명의 국민 대신 청와대 마당에서 불교계 원로들을 만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지관 스님의 건의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하면 통상마찰 등으로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면서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만약 촛불 시위에 나온 국민들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지관스님의 건의에 대해 그같은 답변을 했을 리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대통령은 국민들의 뜻은 알지만 본인의 뜻은 꺾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 시켜준 셈이 된다.

 이 대통령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오랫동안 CEO로 일했고 CEO는 소비자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좀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노력할 것이다.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1~2년 내 진전을 보게 된다면 그 지지자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말도 했다.

국민의 건강권 보다 통상마찰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기업인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CEO가 아니라 대통령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자꾸만 자신을 CEO라고 말한다. 국민은 소비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대통령님, 인터뷰에서 완전 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실수로 '못'자를 빠뜨린게 아니신지?" 세종로가 청와대에서 너무 멀어 국민들이 "아"라고 말하면 "어"라고 들리는 모양이다.

 촛불시위를 시작한지 25일이 지났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기다려도 대답없는 청와대를 향해 국민들이 먼저 움직였지만 정부는 막힌 언로처럼 경찰력을 동원해 무력으로 길을 막았을 뿐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몸을 막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막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민심은 이반되고, 더 많은 촛불을 밝힐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일자 신문을 보자. 이 대통령이 장관.수석 등 4~5명의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일간지 1면에 실렸다. 친박 일괄복당 허용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은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다. 국민들은 거리에서 피흘려가며 재협상을 외치고 있는데, 친박의 일괄복당 문제를 논의한다니, 국민들은 미친소 먹지 않아도 미칠 노릇이다.

 사실 쇠고기 수입 문제는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을 뿐,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국정수행이 쌓여 오늘날의 결과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은 경제살리기라는 미명하에 국민들을 무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고 있다. 기업이 잘 된다고 국민이 잘 산다는 건 70년대 개발국가의 논리일 뿐이다. 구조조정으로 안정적인 직장이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현실에서 국민은 미래설계는 꿈꿀 수도 없고 하루하루 살아가야 할 걱정에 근심만 늘어가고 있다.

 중고생들은 어떤가. 학교 성적 공개와 0교시 부활, 우열반 편성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만 하는 형편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공부만 잘하면 대학 나와 먹고살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바로 옆 짝꿍, 친구를 누르고 경쟁에서 승리자가 된다고 해도, 미래가 밝지 않다. 이들 앞에는 또 다른 무한경쟁의 사회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국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에 불안해진 국민들은 이제, 쇠고기 재협상뿐만 아니라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이를 몇몇 불순한 세력의 선동이나 소수 국민의 치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꽃은 작지만, 그 불이 번지고 나면 그때는 불을 끄려고 해도 끌 수 없다는 것을 현 정권은 모르는가. 지금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미래는 없다. 어설픈 반전 카드로는 지금의 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 국민들이 받아들일리 없다. 진심을 담은 사죄와 쇠고기 재협상, 그리고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한 국정운영을 약속하는 무조건 항복 말고는 다른 돌파구가 있을리 없다. 이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겠다던 약속을 잊었는가.

 특검은 무려 4조5000억에 달하는 돈을 비자금이 아닌 이건희 회장의 개인돈이라고 결론내렸다. 우스운 것은 범죄 수사를 하면서 피의자측, 즉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는 측의 주장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경찰과 검찰이 살인 용의자를 심문하면서 용의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 좋다. 스스로 수사 미진을 시인하는 무능력 함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이 회장과 임직원들이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과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통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배임)는 사실을 밝히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이 1194개에 이르는 차명 계좌를 이용해 4조5000억이라는 막대한 재산을 숨겨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낸 것도 수사의 결실이라면 결실이다.

 그 큰 돈을 자신이 오너로 있는 회사의 임직원들 이름을 빌려 관리하고 여기에 다른 간부들이 개입한 것은 조직적 범죄다. 이 회장은 이러한 수법으로 1000억이 넘는 세금을 포탈했고 5000억이 넘는 증여세도 내지 않았다.

 “오늘 공소제기하는 범죄사실은 배임행위로 인한 이득액이나 포탈한 세액이 모두 천문학적인 거액으로, 법정형이 무거운 중죄에 해당한다.” 특검이 말한대로다.

 그런데 아무도 구속기소는 하지 않았다. 핵심 임원들을 구속하면 기업경영에 엄청난 공백과 차질을 빚어, 국익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이 한 이유다. 중범죄자를 엄단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국익에 보탬이 된단 말인가. 범죄를 저지르려면 국익과 연관될 만큼 크게 저지르라고 국민에게 가르치려는 모양이다.
 
 이어지는 다른 이유를 듣고 있노라면, 눈과 귀를 막고 싶어 진다. 특검은 “지배구조를 유지·관리하는 과정에 장기간 내재돼 있던 불법행위를 현시점에서 엄격한 법의 잣대로 재단해 처단하는 것으로,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배임·포탈 범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4조5000억이나 되는 개인 재산을 은닉하고, 세금을 포탈한 것이 개인적 탐욕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차라리 회사의 경영을 위해서 비자금을 숨겨뒀던 것이라면 회사와 국익을 위해서라는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개인 재산을 숨겨두는 것이 어째서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특검은 이 많은 돈을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몰래 숨겨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돈이 미술품을 사는 것 외에 어떠한 용도로 쓰였으며, 그것이 어떻게 국익에 보탬이 됐는지 설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특검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1194개의 차명계좌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비자금을 전혀 찾지 못한 특검은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계좌추척은 제대로 해 보지도 않았다. 수사가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에 넘겨 더 철저한 수사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종결시키기까지 했다.

 조준웅 특검은 "이번 수사를 계기로 삼성이 환부를 털어내고 명실상부한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검사가 수사를 마친 후 중범죄자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라, 수술을 마친 의사가 환자에게 덕담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오늘, 4월 18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이건희 회장 1128억 조세포탈' 기사와 함께 "한국은 가장 기업친화적 나라가 될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뉴욕 연설 기사와 사진이 함께 실렸다. 굳이 이명박 대통령이 먼 미국까지 가서 말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쓸데없는 수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 어느나라 사람들이라도 이번 수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기업친화적인 나라인가를 알 수 있을텐데 말이다.

 지난 주 금요일 퇴근 길에 롯데백화점에 들렀다가 와인창고 개방전이 열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야 있나.' 엄청난 길이의 줄에도 불구하고, 싼 값에 와인을 살 수 있다는 기대에 대열에 동참했다.

 근 20분을 기다려, 개방전 장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동 하기가 쉽지 않아 짜증이 나는 터였는데 전시돼 있는 와인들을 보는 순간 짜증은 배가 됐다.
 
 정가가 4만원인 와인을 1만원에 팔고 있다고 하는데,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비인기 와인들이었다. 실제 가격이 4만원이나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나중에 집에와서 찾아보니, 일반 와인 매장에서 1~2만원대에 팔리고 있는 와인들이었고 그나마도 종종 할인 판매되는 와인들이었다. 이래서야 '최대 90% 할인'이라는 팜플렛의 문구가 무색하지 않은가.
 
 좀 쓸만한 와인들도 있기는 했다. 2005년 빈티지의 브란 캉드냑과 샤토 지스쿠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와인들은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쌌다. 각각 12만, 11만원이라고 하는데, 원래 18만원?(주위가 시끄러워서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안난다) 하는 가격을 할인해서 파는 거라고 했다. 백화점이라는 걸 고려해도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이 와인들은 대형마트나 와인전문점에서 정상가로 8~9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싼 와인들은 떨이로 팔아 먹고, 좋은 와인들은 마치 싸게 파는 양 내세우면서 제값 다 받아먹는 창고 대 개방전이라니. 언론에 보도자료까지 뿌려가면서 소비자 현혹하는 상술에 쓴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고양의 한 아파트에서 누가 봐도 납치 미수로 보이는 어린이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50대 남자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 후 끌려나가는 모습이 CCTV에 그대로 촬영됐다. 아이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가 준 한 주민 덕분에 아이는 겨우 납치를 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원(경찰)은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이를 단순 폭행사건으로 처리한다.

 SBS 보도에 따르면(3월 30일자 8시 뉴스), 사건 현장에 출동한 지구대원은 아이를 구한 목격자는 만나지도 않았다. 목격자가 없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은 "그런 거 없다"고 답한다. 사건 다음날 현장을 찾은 형사 역시 승강기에 지문이 없어 단서가 없다는 말만 남기고 CCTV는 확보하지도 않고 돌아갔다.
 
 그런데, 31일자 노컷뉴스 보도를 보면 SBS 내용과는 아구가 맞지않는 부분이 있다. 문제의 보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기태 일산경찰서장은 31일 자정 수사본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당시 출동한 지구대 직원이 목격자들의 진술과 CCTV에 찍힌 범인의 행색으로 미뤄 납치 미수사건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이 점에 있어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서장의 발언대로라면 당시 지구대원은 목격자를 만나 진술을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위 SBS의 보도에 따르면 지구대원은 목격자를 만나지도 않았다.

 언론이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경찰서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지구대원은 물론 경찰서 형사까지 현장을 (제대로?) 두번이나 확인하고도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폭행사건으로 취급했다. 변변한 수사도 하지 않고 있다가 언론에 사건이 첫 보도된지 불과 하루 만에 경기지방경찰청 차원에서 수사본부를 꾸린 경찰의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경찰이 아이의 부모에게 "언론에는 알리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는 보도도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면 '단순폭행'으로 조용히 넘어갔을 지도 모를 참 안타까운 사건이다.

주의! 이 글은 영화에 대한 분석이자 '스포일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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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파리에 도착한 성남에게 낯선 남자가 영어로 질문을 던진다.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성남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가 영어가 서툴러서일 수도 있고, 당황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시작과 함께 성남이 처한 상황을 자막을 통해 이미 관객들에게 알려줬다. 성남은 대마초를 피운 것이 발각된 후 경찰에 잡혀가는 것이 두려워 파리로 도피한 것이다. 성남이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멀뚱멀뚱 서 있는 사이, 낯선 남자는 한마디를 더 남기고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사라진다. "조심해"

 이 별것 아닌 것 같은 영화의 첫 장면에 감독 홍상수는 엄청난 암시를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밤과낮'이라는 영화의 모든 것을.

 파리의 밤은 한국의 낮, 파리의 낮은 한국의 밤이며 동시에 유리된 공간이다. 파리는 한국과는 반대인 곳으로 한국이 성남의 실제세계라면 파리는 그에게 환상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다시는 연애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성남의 독백과는 달리, 마치 꿈처럼, 젊은 미술학도 유정과의 새로운 연애가 시작된다.

 유정과의 연애가 시작되기에 앞서 성남은 10년전 애인을 만난다. 성남의 옛 애인은 "당신 때문에 낙태를 6번이나 했다"고 말한다. "정말? 말을 하지." 성남이 대답한다. 여자는 이 지독한 악연의 남자와 함께 자기를 원한다. 하지만 성남은 유부녀에 늙어버린 그녀에게서 성적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죄를 지은 눈은 뽑아 버리는 것이 낫다'는 성경 구절까지 들먹여가며, 옛 애인과의 잠자리를 피한 성남은 얼마 후 신문에서 그녀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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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잠자는 유정의 발을 빨다 걸린 성남. 그런 성남에게 유정은 "남자가 치사하게. 차라리 하지"라고 말한다. '그녀도 원할 것'이라는 남자의 맹랑한 상상이다.


옛 애인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성남은 열병이 나고, 꿈을 꾼다. 꿈속에서 성남은 얼마 전 만나 한눈에 반한 여자, 유정의 집을 찾는다. 잠자고 있는 유정의 발가락을 입술로 빠는 성남은 옛 애인의 죽음으로 맞이한 열병과 그로 인한 꿈속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젊은 육체를 탐하고 있다. 지나간 여자의 죽음은 몸살로 지나가고, 그의 마음속을 점령하고 있는 건 젊은 육체에 대한 탐욕뿐이다. 오르셰 미술관에서 여자의 하체를 그린 '인류의 기원'을 지켜보며 미소를 짓고, 흔히 최음제로 여겨지는 굴에 집착하는 모습에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성남은 우연히 유정의 미술학교 후배 지혜를 만나게 된다. 지혜는 성남에게 "유정은 미술가로서 자질이 부족하며 자신의 그림 아이디어를 베꼈다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고 알려준다. 그 후 성남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새끼 새의 목숨을 구한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가 성남의 어깨 위로 떨어지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 성남은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유정의 육체를 탐하는 것에 대해, 새끼새를 구원했던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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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과의 연애를 꿈꾸는 성남은 성당에서 용서를 빈다. 옛 애인과의 잠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성경구절을 들먹였던 그가, 이제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신에게 죄사함을 빌고 있다. 그러나 용서를 구했다고해서, 그의 욕망이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다.


 결국 유정과 마음을 사로잡아 몸을 섞는 성남은 유정에게 "넌 예뻐", "사랑 한다"고 말한다. 유정 역시 경계의 마음을 풀고 성남을 마음껏 사랑하기로 한다. 하지만 유정의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성남은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돌아가기로 한다. 성남은 출국을 앞두고 유정 역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파리에서 생긴 아이는 돌볼 생각이 없는 듯하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다 기억할게" 라는 의미 없는 말 만을 남긴다. 그에게 유정은 이제 자살한 옛 애인과 다를 것이 없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만난 아내 성인이 자신을 부르기 위해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성남은 화내지 않는다. 파리에서의 일탈보다 그에게는 한국에서의 진짜 삶이 중요하다.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든 성남은 꿈을 꾼다. 그리고 꿈에서 파리에서 우연히 만났던 유정의 학교 후배 지혜를 다시 만난다. 꿈속에서 지혜는 성남의 아내다. 뜻밖이다. 꿈속에서 등장해야할 여인은 유정이 아니었나? 자신이 파리에서 그토록 사랑한다고 말했던 여인은 어디를 가고, 아주 잠깐 만났던 지혜가 나타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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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자고 싶어" 유정은 이 어이없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성남은 임신한 그녀를 버리고 떠난다. "다 기억하겠다"는 말을 남긴채. 도대체 기억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꿈속에서 성남은 지독한 마초다. 아내에게 전 아내를 만나러 가자고 하면서 별로 미안한 기색이 없다. "네가 원하면 만나러 가자"는 단서를 달지만 이미 결론은 가는 쪽으로 정해져 있다. 오토바이와 부딛혀 선물로 준비한 도자기를 깨뜨린 지혜에게 성남은 욕설을 퍼 붓는다. "이런 씨발, 꺼져버려..." 얼마나 강렬하게 꿈을 꿨을까. 함께 잠을 자던 아내 성인이 성남을 흔들어 깨우며 묻는다. "그 여자 누구야?" 성남은 꿈을 꿨다고 말하지만 성난 아내는 소리친다. "그건 꿈이 아니야!"

 그래 그건 꿈이 아니다. 영화는 우리가 아는 현실은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마치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장주는 자기가 장주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은 장주가 아닌가.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영화 속 지혜의 이름만이 실제 배우의 이름과 일치한다는 것은 우연일까. 나머지는 모두 허구, 실제하는 것은 지혜 뿐이다. 구름을 그리는 화가 성남은 파리에서 낮게 깔린 아름다운 구름을 보고도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구름은 환상을 뜻하고, 실제 세계가 아닌 파리에서 구름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머리로 돌아가 보자. 낯선 남자가 성남에게 물었다. "당신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그는 파리에서 한바탕 꿈을 꾸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꿈꾸고 있다. 그리고 꿈속에서 현실을 만난다. 남루한 현실을.

 관객들은 그의 꿈을 보면서 분노하고 사랑이라는 단어의 공허함에 씁쓸함을 느낀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꿈. 그것이 우리의 삶을 투영하는 순간,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영화를 현실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다.

 티베트 소요사태가 발생한지 5일째. 티베트 망명정부는 이번 사태로 80여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망자 수는 16명에 불과하다.

 부상자는 얼마인지, 피해상황은 얼마나 되는지, 시민들의 심리상태는 어떤지, 중국의 진압작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외신기자들에게도 총부리를 들이댈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 때문인지, 정확한 현지 소식을 접하기가 어렵다. 그나마도 중국정부가 외신기자들을 지역 밖으로 추방하고 있어, 앞으로 티베트의 소식을 알기는 더욱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외신기자들의 추방 소식에 맞춰, 중국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 시짱일보가 "티베트의 주도 라싸가 질서를 회복하고 있다"고 한 것.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중국 정부는 굳이 외신기자들을 추방해 국제사회의 의심을 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안정된 도시의 상황을 국제사회에 홍보라도 해야할 터다.

 시위대 투항 최후통첩 시한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인민해방군 1만명을 라싸에 투입했다. 티베트 인근에는 검문소가 설치됐고, 일반인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가.
 "아직도 CD 구입하세요?" 내가 가끔 듣는 말이다. 나는 적게는 한 달에 1개, 많게는 3~4개의 앨범, 혹은 컬렉션을 구입한다.

 MP3가 대세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CD에는 MP3로는 채울 수 없는 만족감이 있다. 앨범을 소유한다는 기쁨도 있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MP3로 전환해 들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질 좋은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람들의 귀가 고급스러워 진 까닭인지 수십만원 대의 이어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급 이어폰으로 사람들은 휴대용 MP3의 음악을 듣는다. 대부분은 그게 다다. 욕하자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수십만원은 아니더라도 5만원 이상은 줘야하는 이어폰과 헤드폰을 구입했고,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비용대비 만족도는 떨어진다. 이어폰이 아무리 좋아도 음원과 재생기기가 받쳐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휴대용 기기는 대체로 야외에서 이용하게 되는데, 주변의 소음도 음악의 몰입도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음악을 들을 때면 집에 있는 오디오를 이용한다. 스피커, CDP, 인티앰프 다 합해 100만원 안짝이다. 이것도 과분하다고 생각해 다운 그레이드를 고려 중이다. 대신 남는 돈으로 방에 하나, 마루에 하나 도합 2개의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할 생각이다. 조금 신경 써서 오디오를 골라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겠지만, 수십만원짜리 헤드폰으로 MP3 플레이어를 듣는 것보다는 같은 값으로 오디오를 사 듣는 것이 귀가 더 즐겁다.

 무엇보다도 내 작은 소비가, 나의 즐거운 음악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 주는 바탕이 된다. 음반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음반사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다면 생산되는 음악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몫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싼 물건을 놔두고 비싼 물건을 구입하는 건 현명한 소비가 아니지만, 좀 더 돈을 주더라도 가치 있는 것을 구입하는 것은 현명하다. 특히나 클래식 쪽은 전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싼 가격에 음반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구하기도 힘든 불법 복제 MP3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CD를 구입하는 쪽이 훨씬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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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쯤 6만원을 주고 구입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 그땐 다 이렇게 비쌌다. 훨씬 더 비싼 앨범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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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구입한 베에토벤 컬렉터 에디션. 50장에 7만1500원이다. 이쯤되면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다 들을 수 있느냐가 문제. 사실 이런 컬렉션 발매는 음반사의 제살깎아먹기 정책으로, 악화된 시장상황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다. 이 후보자는 40여건의 부동산을 가진 땅부자로 투기 의혹을 받아왔다. 이 후보자 장남의 경우 아예 상속세와 납세 명세를 제출하지 않았는데, 장남까지 포함하면 사퇴한 이 후보자 가족이 가진 부동산은 더 늘어날 지도 모른다.

 과거 정권도 총리•장관 후보자가 땅투기 의혹, 자녀문제 등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춘호 후보 한 명 정도라면 인선 과정의 실수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실수라고 말하기에는 논란 거리를 안고있는 후보들이 너무 많다.

 남주홍 통일장관 후보자는 부인의 투기 의혹 외에도 딸과 아들의 미국 시민권과 영주권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박은경 환경장관 후보자의 경우, 외지인이 살 수 없는 절대농지를 구입했으며 자녀 2명이 미국 시민권을, 남편이 3개의 골프장 회원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의 '강부자' 내각은 인수위가 5000명을 검증해서 내세운 사람들이라고 한다. 재력 면에서는 확실히 '대한민국 1%'라 불러도 좋을만한 이들이다. 하지만 도덕성은 1%와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인력풀 중 부동산, 자녀국적, 병역 등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찾기가 그렇게도 힘들단 말인가.

"부자들도 정치해야 되지, 가난한 사람만 정치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백지연의 SBS전망대'에서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이 한 말이다. 물론 부자들도 정치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부자들이 땅투기로 부를 축척했고, 자식들은 딴나라 시민권 가진 이들을 말한다면, 그냥 속세에 파묻혀 입 꼭 다물고 조용히 살라고 말하고 싶다.
 값싼 비정규직 고용해, 돈 많이 버는 기업가들이 귀빈 대접을 받게 생겼다.

 인수위가 이명박 당선자의 뜻을 받들어 기업인 1000명을 선정, 공항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공항 귀빈실에 가보니 기업인은 없고 정치인만 있다. 정치인보다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인이 귀빈실을 써야 한다고"고 말한 바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우리나라에서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이미 떵떵거리고 대우 받을 만큼 받으며 사는 '귀빈'이다. 재벌 총수들을 보라. 주변에 가신들이 드글대고, 정치권과 검찰도 눈치를 볼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다. 지금도 공항에서 '특별 손님'인 이들이 앞으로는 공식적인 '귀빈'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법률적으로는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다. 돈 잘 버는 기업가들은 나라가 인정해 주는 귀한 분이 되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2008년 1월 8일자 중앙일보에 '기업인 1000명 공항 귀빈실 이용'과 함께 '비정규직 고용기간 2년->3년 연장 추진'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노둥부가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마련, 인수위에 보고한다고 한다.

 2006년 11월 이 법안이 만들어 질 때, 정부와 기업에서는 비정규직 고용기간 3년을 노동계에서는 1년을 주장했다. 그 절충안으로 2년의 비정규직 고용기간이 정해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협상의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는 묻지도 않고, 기업의 주장대로 비정규직 3년 고용이 가능하게 법을 뜯고 고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동부는 "기업들이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미리 해고하거나 아예 비정규직 채용을 기피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3년으로 늘리면 이 기간 중 해당 업무의 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 전환에 따른 부담도 없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채용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2년차는 자르고, 3년차는 정규직으로 전환을 시켜준단 말인가?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는 임금이 싸고, 맘껏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소모품처럼 쓰다가 버리고 필요하면 다시 새 인력을 구하면 그뿐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운전기사, 간병인 등 32개 업종으로 제한 된 파견근로자 허용 업종에 대한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쉽게 쓰고, 자를 수 있는 파견 근로자를 모든 업종에서 맘껏 고용하게 해 주겠다니 기업인들이 쾌재를 부를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20대의 대부분은 저임금 고노동에 언제 잘릴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88만원 세대'다. 일부 전문직이나 공무원, 공기업 등을 제외하고는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힘든 현 상황에서 턱없이 부족한 '정규직' 자리마저 줄어든다면 이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정규직이 되지 못한 고속열차 여 승무원들의 길고 처절한 싸움을 보라. 고속열차 운행을 앞둔 2004년 2월 새 직장에 대한 설램과 희망으로 가득찬 고속열차 1기 여승무원들을 만난 적이 있다. "비정규직인 건 알고 있나요. 걱정 되지 않아요?" 라는 나의 질문에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라 믿는다. 걱정하지 않는다"던 그들의 대답을 나는 기억한다.

 비정규직, 파견근로자는 회사에서 언제 계약 파기 통보를 받을 지 모르는 위태로운 신분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질수록 잘리지 않기 위해 몸을 낮출 수 밖에 없는 약자들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이용해 인건비를 낮추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공로로 귀빈 대접까지 받게 된 셈이다.

 어차피 돈 많은 사람들은 돈 내고 공항 라운지 이용하면 된다. 그리고 지갑이 가벼운 사람들은 그냥 공항안 어딘가에서 시간을 때우면서 비행기 탑승 시간을 기다리면 된다. 그게 자본주의의 논리다. 굳이 정부가 나서서 기업인들을 떠받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돈 잘 버는 기업인들만 귀한가. 국민 한명 한명이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귀한 사람들임은 이 당선자는 모르는가. 이 당선자가 펼치려는 정책은 '따뜻한 자본주의'인가 아니면 '천민 자본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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