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하면 프랑스가 떠오르죠. 보르도와 브르고뉴산 와인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와인은 오랜 역사와 풍부한 맛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프랑스 와인하면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프랑스는 1855년 보르도 자체적으로 와인 등급을 매기기 시작했고 1935년에는 법으로 와인등급을 정할 정도로 품질 유지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오랜 전통과 체계적인 관리가 오늘날 프랑스 와인의 명성을 만든 거죠.

그런데 고급 와인의 대명사 프랑스 와인, 정확히 말하면 보르도 와인이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인에게 헤비급 펀치를 맞았습니다.

지난 5월 24일 나파밸리와 런던에서 동시에 진행된 블라인딩 테스트에서 보르도 와인이 캘리포니아 와인에게 맛에서! 밀린 겁니다. 보르도 와인 4개와 캘리포니아 와인 6개가 출품됐는데 1위부터 5위까지를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이 차지한거죠. 심사위원 중에는 프랑스 사람도 있었으니 프랑스로서는 할 말 없어진 셈입니다.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라에서 열렸던 블라인딩 테스트에서도 프랑스 와인이 캘리포니아 와인에게 패했었습니다. 당시에는 사기극이니 웃기는 일이라느니 하고 테스트 자체가 폄하됐었죠. 언론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행사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30년만의 재대결' 세계 언론이 주목했죠. 언론 보도를 보니 프랑스 와인 수출에 영향을 끼칠 거라는 말도 있더군요.

프랑스 와인 특히 보르도 와인이 유명한 건 '테루아' 때문입니다. 토질, 기후 등 포도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말하는 프랑스 말인데요 보르도 지방의 테루아가 와인용 포도에 자라기에 딱~이라는 거죠. 보르도 지방은 물이 많고, 바람이 적당히 불고, 햇빛을 받기에 적당한 땅의 기울기를 가지고 있는 천혜의 지역입니다. 그리고 샤또의 오랜 전통과 함께 만들어진 양조기술이 오늘날의 와인을 만들어 낸 겁니다. 그런데 이 전통을 너무 고수한 나머지 개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 오늘날 신대륙의 와인에 따라잡히게 됐다는 것이 언론의 평가입니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과 바람 등 프랑스 못지 않은 테루아도 캘리포니아 와인을 품질을 높여주는 원인이겠죠.

본래 캘리포니아 와인은 양조기술이 떨어져 품질이 좋지 않았는데요. 양조 기술을 캘리포니아에 전해준 게 바로 프랑스의 대표적 와인 샤또인 무통 로칠드입니다. 24일 열린 시음회에서 6위를 차지한 프랑스 와인이죠.

무통 로칠드는의 무통은 모통 "작은 언덕"에서 온 말인데요. 로칠드 가문이 인수하면서 무통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무통은 양을 뜻합니다. 그래서 무통 로칠드의 문장에는 양이 그려져 있죠. 무통은 현재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이지만 1855년 보르도에서 파리 세계박람회를 맞아 와인 등급을 정할 때는 1등입 프리미에 크뤼 등급에 뽑히지 못했습니다. 프리미에 크뤼 등급에 뽑힌 4개의 샤또는 마고, 라피트, 라투르, 오브리옹입니다. 이 4개의 샤또는 지금까지도 1등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통은 당시 1등급 와인에 뽑히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았죠. 그리고 '나는 1등이 아닐지 모르지만 2등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무통이다'라는 모토를 만듭니다. 그리고 1973년에 비로소 1등급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모토도 '나는 1등이다. 2등이었다. 무통은 변하지 않는다'로 바뀌죠.

무통의 자존심과 프랑스의 와인에 대한 자존심이 다르지 않을 겁니다. 와인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샤토의 외국인 소유까지 제한하는 프랑스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스승이 제자에게 기술을 전수해줬더니 제자가 스승을 능가한 셈이랄까. 기뻐해야 할 일 같기도 한데 그럴 수 없는 마음 이해 가십니까?

참고로 이번에 열린 와인 테스트 순위 입니다.


1. 리지 몬테 벨로(1971년.캘리포니아)

2. 스태그스 립(1973년.캘리포니아)

3. 하이츠 마샤스(1972년.캘리포니아)

4. 마야카마스(1971년.캘리포니아)

5. 클로 뒤 발(1972년.캘리포니아)

6. 샤토 무통 로칠드(1970년. 보르도)

7. 샤토 몽로즈(1970년.보르도)

8. 샤토 오브리옹(1970년.보르도)

9. 샤토 레오빌 라스 카즈(1971년.보르도)

10. 프리마크 애비(1969년.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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