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지식경제부는 ‘휴대전화 가격표시제’를 도입했다. 제조업체와 이동통신사 매장에서 단말기 가격을 뻥튀기한 다음에 대폭 할인해 주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 등 불공정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12일 이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같은 이동통신사 매장인데도 요금제 할인금액과 할부지원액은 매장마다 들쭉날쭉하고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오는 5월부터는 개인이 휴대전화를 구입한 뒤 이동통신사를 통해 개통하는 ‘블랙리스트 제도’도 시작된다. 그러나 이동통신사들은 이런 고객에게 요금할인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어 제도가 정착될지는 미지수다. 
 

◆복잡한 휴대전화 가격에 소비자 혼란


휴대전화 판매점이 밀집한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노트의 판매가격을 알아봤다. 매장마다 제품 옆에 작은 글씨로 휴대전화의 가격을 표시해 놓았다. 하지만 상담이 시작되면 가격표시제가 변죽만 울린 제도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휴대전화 판매원들은 “정부에서 표시하라고 하니까 하기는 했는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판매가격이 매일 변하는데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가격표시제는 요금제와 분리한 스마트폰의 정확한 가격을 별도로 표시하고 이 가격에 따라 팔도록 했지만 매장별로 제시한 실제 판매가격은 제각각이고 별도의 구매조건을 내걸기 일쑤다.
 

A매장의 경우 갤럭시노트(16GB)의 기기 값은 93만3900원, 일시 할인금액 15만원과 52요금제(월 5만2000원) 24개월 약정 시 매달 1만4912원의 추가 할인조건을 제시했다.

 

B매장은 동일 기종 동일요금제에 대해 24만원 일시 할인과 매달 1만3000원 정도의 요금제 할인을 내세웠다. SK텔레콤이 매월 2920원을 추가 할인해 주는 ‘T할부지원’에 대해서는 아예 설명하지 않았다.
 

C매장은 기기값 25만원 일시할인과 52요금제 약정조건으로 월 1만4850원의 추가할인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C, D 매장은 T할부지원을 별도로 설명했지만 지원금액은 4167원과 2600원으로 제각각이었다. C 매장은 “다른 매장의 가격을 알아보고 오면 그보다 더 싸게 판매하겠다”는 옵션을 내걸기도 했다.
 

요금제 할인금액과 할부지원은 이동통신사가 정해 놓은 정책으로 각 매장이 동일해야 하지만 판매점별로 설명이 상이했다. 자칫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은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구매할 경우 판매자로부터 설명을 들은 것보다 돈을 더 내야 할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또 이들 매장은 하나같이 62요금제(월 6만2000원)나 72요금제(월 7만2000원)를 최소 2달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별도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단말기 할인을 아예 해주지 않거나 3만∼5만원의 추가금을 요구했다.

◆블랙리스트 제도 시작 전부터 ‘삐걱’


5월부터 블랙리스트 제도가 시행되면 복잡한 요금제나 할인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휴대전화만 구입하고 이통사 상품에 구입하면 된다. 판매점에서 구매조건을 놓고 승강이를 벌이거나 바가지를 쓸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제도를 통해 중고 단말기 활성화와 통신비 인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블랙리스트 제도가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블랙리스트 제도가 성공하려면 휴대전화 출고가가 판매가 수준으로 낮아지고 이통사 유통망을 통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구매한 소비자에게도 통신요금 할인이 이뤄져야만 한다. 방통위가 블랙리스트 제도에 따른 별도의 할인제도를 내놓기 위해 이통사와 협의를 벌이고 있지만 이통사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아예 SK텔레콤 관계자는 “블랙리스트 제도에 따른 요금할인을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도 “휴대전화 가격을 내리는 건 어렵다. 라인업을 다양화해 저가폰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단말기 제조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통사가 관리하는 대리점과 판매점이 2만개가 넘는데, 제조사가 이통사 입김을 무시하고 휴대전화 가격을 내리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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