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은 영화에 대한 분석이자 '스포일러' 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신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파리에 도착한 성남에게 낯선 남자가 영어로 질문을 던진다.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성남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가 영어가 서툴러서일 수도 있고, 당황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시작과 함께 성남이 처한 상황을 자막을 통해 이미 관객들에게 알려줬다. 성남은 대마초를 피운 것이 발각된 후 경찰에 잡혀가는 것이 두려워 파리로 도피한 것이다. 성남이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멀뚱멀뚱 서 있는 사이, 낯선 남자는 한마디를 더 남기고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사라진다. "조심해"

 이 별것 아닌 것 같은 영화의 첫 장면에 감독 홍상수는 엄청난 암시를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밤과낮'이라는 영화의 모든 것을.

 파리의 밤은 한국의 낮, 파리의 낮은 한국의 밤이며 동시에 유리된 공간이다. 파리는 한국과는 반대인 곳으로 한국이 성남의 실제세계라면 파리는 그에게 환상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다시는 연애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성남의 독백과는 달리, 마치 꿈처럼, 젊은 미술학도 유정과의 새로운 연애가 시작된다.

 유정과의 연애가 시작되기에 앞서 성남은 10년전 애인을 만난다. 성남의 옛 애인은 "당신 때문에 낙태를 6번이나 했다"고 말한다. "정말? 말을 하지." 성남이 대답한다. 여자는 이 지독한 악연의 남자와 함께 자기를 원한다. 하지만 성남은 유부녀에 늙어버린 그녀에게서 성적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죄를 지은 눈은 뽑아 버리는 것이 낫다'는 성경 구절까지 들먹여가며, 옛 애인과의 잠자리를 피한 성남은 얼마 후 신문에서 그녀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꿈속에서 잠자는 유정의 발을 빨다 걸린 성남. 그런 성남에게 유정은 "남자가 치사하게. 차라리 하지"라고 말한다. '그녀도 원할 것'이라는 남자의 맹랑한 상상이다.


옛 애인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성남은 열병이 나고, 꿈을 꾼다. 꿈속에서 성남은 얼마 전 만나 한눈에 반한 여자, 유정의 집을 찾는다. 잠자고 있는 유정의 발가락을 입술로 빠는 성남은 옛 애인의 죽음으로 맞이한 열병과 그로 인한 꿈속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젊은 육체를 탐하고 있다. 지나간 여자의 죽음은 몸살로 지나가고, 그의 마음속을 점령하고 있는 건 젊은 육체에 대한 탐욕뿐이다. 오르셰 미술관에서 여자의 하체를 그린 '인류의 기원'을 지켜보며 미소를 짓고, 흔히 최음제로 여겨지는 굴에 집착하는 모습에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성남은 우연히 유정의 미술학교 후배 지혜를 만나게 된다. 지혜는 성남에게 "유정은 미술가로서 자질이 부족하며 자신의 그림 아이디어를 베꼈다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고 알려준다. 그 후 성남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새끼 새의 목숨을 구한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가 성남의 어깨 위로 떨어지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 성남은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유정의 육체를 탐하는 것에 대해, 새끼새를 구원했던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정과의 연애를 꿈꾸는 성남은 성당에서 용서를 빈다. 옛 애인과의 잠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성경구절을 들먹였던 그가, 이제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신에게 죄사함을 빌고 있다. 그러나 용서를 구했다고해서, 그의 욕망이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다.


 결국 유정과 마음을 사로잡아 몸을 섞는 성남은 유정에게 "넌 예뻐", "사랑 한다"고 말한다. 유정 역시 경계의 마음을 풀고 성남을 마음껏 사랑하기로 한다. 하지만 유정의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성남은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돌아가기로 한다. 성남은 출국을 앞두고 유정 역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파리에서 생긴 아이는 돌볼 생각이 없는 듯하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다 기억할게" 라는 의미 없는 말 만을 남긴다. 그에게 유정은 이제 자살한 옛 애인과 다를 것이 없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만난 아내 성인이 자신을 부르기 위해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성남은 화내지 않는다. 파리에서의 일탈보다 그에게는 한국에서의 진짜 삶이 중요하다.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든 성남은 꿈을 꾼다. 그리고 꿈에서 파리에서 우연히 만났던 유정의 학교 후배 지혜를 다시 만난다. 꿈속에서 지혜는 성남의 아내다. 뜻밖이다. 꿈속에서 등장해야할 여인은 유정이 아니었나? 자신이 파리에서 그토록 사랑한다고 말했던 여인은 어디를 가고, 아주 잠깐 만났던 지혜가 나타난단 말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너랑 자고 싶어" 유정은 이 어이없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성남은 임신한 그녀를 버리고 떠난다. "다 기억하겠다"는 말을 남긴채. 도대체 기억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꿈속에서 성남은 지독한 마초다. 아내에게 전 아내를 만나러 가자고 하면서 별로 미안한 기색이 없다. "네가 원하면 만나러 가자"는 단서를 달지만 이미 결론은 가는 쪽으로 정해져 있다. 오토바이와 부딛혀 선물로 준비한 도자기를 깨뜨린 지혜에게 성남은 욕설을 퍼 붓는다. "이런 씨발, 꺼져버려..." 얼마나 강렬하게 꿈을 꿨을까. 함께 잠을 자던 아내 성인이 성남을 흔들어 깨우며 묻는다. "그 여자 누구야?" 성남은 꿈을 꿨다고 말하지만 성난 아내는 소리친다. "그건 꿈이 아니야!"

 그래 그건 꿈이 아니다. 영화는 우리가 아는 현실은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마치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장주는 자기가 장주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은 장주가 아닌가.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영화 속 지혜의 이름만이 실제 배우의 이름과 일치한다는 것은 우연일까. 나머지는 모두 허구, 실제하는 것은 지혜 뿐이다. 구름을 그리는 화가 성남은 파리에서 낮게 깔린 아름다운 구름을 보고도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구름은 환상을 뜻하고, 실제 세계가 아닌 파리에서 구름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머리로 돌아가 보자. 낯선 남자가 성남에게 물었다. "당신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그는 파리에서 한바탕 꿈을 꾸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꿈꾸고 있다. 그리고 꿈속에서 현실을 만난다. 남루한 현실을.

 관객들은 그의 꿈을 보면서 분노하고 사랑이라는 단어의 공허함에 씁쓸함을 느낀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꿈. 그것이 우리의 삶을 투영하는 순간,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영화를 현실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