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시장이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했다. 이동통신사들은 더 많은 보조금을 쓰는 업체가 더 많은 가입자를 차지한다며 탄식하고 있지만 서로 네 탓만 하고 경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요금 인하를 요구할 때마다 가입자 증가 정체와 네트워크 투자 비용 부담 등으로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통신사들이 고객 확보에는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부으면서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법원의 통신요금 원가 공개 판결과 맞물려 통신요금 인하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조금 과열경쟁… 업계는 네 탓 공방


8월 이통3사간 번호이동 건수는 112만건으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가 더 나은 통신서비스를 찾아 이동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서비스의 질 때문이 아니라 보조금에 따라 고객이 움직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8월1일부터 14일까지 번호이동 숫자는 21만건으로 다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15일부터 31일까지 보름간 번호이동 건수는 91만건으로 폭등했다. 이 기간은 이통사들이 보조금을 갑자기 늘린 시점과 일치한다.


한 이통사가 보조금을 높이자 이에 질세라 다른 이통사가 보조금을 높이기 시작했고 경쟁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특히 보조금 경쟁이 극에 달한 27일과 28일에는 불과 한 달 전 70만∼80만원에 팔리던 갤럭시S3의 실구매가가 20만∼30만원까지 떨어졌고, 이틀간 18만3810명이 통신사를 바꿨다.


보조금이 껑충 뛰자 앞서 스마트폰을 바꾼 사람들은 졸지에 비싼 가격에 제품을 구입한 '바보'로 전락했다. 이들은 휴대전화 매장을 찾아 항의하고 환불까지 요구하고 있지만 통신사들은 '나몰라라' 하며 남 탓 공방에만 여념이 없다.


지난달 14일부터 리베이트 금액이 급증한 것을 두고 LG유플러스는 KT가 먼저 리베이트 금액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공격했고, KT는 LG유플러스가 먼저 경쟁에 불을 붙인 것이라며 맞받았다. SK텔레콤은 "KT와 LG유플러스가 보조금을 높여 고객을 빼앗기게 돼 어쩔 수 없이 경쟁에 뛰어들었다"며 항변한다.


업계에서는 뒤늦게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 시장에 뛰어든 KT가 연말 400만 가입자 달성을 목표로 세웠으나 실적이 저조하자 무리수를 두면서 보조금 인상 도미노가 이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1인당 보조금이 가장 높던 KT는 2만7188명의 고객을 추가로 확보했고, SK텔레콤은 5만2177명의 고객을 잃었다. LG유플러스는 2만4989명의 가입자가 늘었다.


◆방통위, 시장 혼란에도 구두 경고만


이처럼 업계의 자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주무부처인 방통위의 칼날은 무디기만 하다.


이통 3사는 매출의 20%까지 마케팅비를 허용하는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을 어겨 지난해 9월 13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시 방통위는 다시 과도한 마케팅 경쟁이 벌어질 경우 영업정지 등 강력한 처분을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LTE 시장을 놓고 이미 올해 초부터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였음에도 방통위는 현재까지 실효성 있는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전영만 방통위 이용자보호과장은 "시장감시를 계속하고 있으며 이통사 경고 후 9월 들어 번호이동 건수가 다시 떨어졌다"며 "제재의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의 구두 경고로 주춤하던 고객 쟁탈 경쟁은 7일부터 9일 사이 갤럭시S3의 실제 구매가격이 온라인에서 10만원대까지 떨어지며 오히려 극에 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통사 관계자는 "정권 말이라 몸을 움츠리고 있는 방통위가 제재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른 이통사가 마케팅 출혈경쟁에 나설 경우 우리도 또다시 울며 겨자 먹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요금 인하 여력이 없다면서도 마케팅비를 쏟아붓는 이통사의 행태를 지적하는 한편, 10일 방통위를 상대로 낸 휴대전화요금 원가정보 공개소송 승소와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의 항소 포기와 즉각적인 정보 공개를 촉구했다.


소송을 주도한 참여연대의 안진걸 민생경제팀장은 "이통사들이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데 이를 줄이고 기본료 등을 인하해야 한다"며 "통신요금을 인하했다고 하는데 이용자들이 내는 요금은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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