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고양 어울림 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 발레 '춘향'을 봤습니다. 심청 1막과 새로이 선보이는 춘향 1막으로 구성된 쇼케이스 였는데요, 가격도 2만원으로 저렴한 공연이었죠. 2만원으로 발레를 볼 수 있다는 것 축복입니다.

먼저 심청에 대해 간단히 얘기한다면...흥미 만점의 발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발레를 무척 어렵게 생각합니다. 뭐 그도 그럴것이 이야기의 내용도 잘 모르고, 대사도 없고 하니..지루할 수 있죠.
심청은 한국 관객에게는 무척 쉬운 발레인데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웬만한 사람치고 전래동화 '심청' 모르는 사람 없죠. 스토리를 꿰고 있으니 당연 춤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됩니다. 두번째로 스펙터클한! 발레란거죠. 특히 1막 2장이 클라이맥스입니다. 심청이가 배를 타고 가다 인당수에 풍덩~하는 신인데요. 남자 무용수들의 화려한 군무와 강렬한 음악, 뮤지컬 못지 않은 무대장치가 볼거리입니다.
전 임신한 와이프와 함께 공연을 봤는데요, 2막에서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 전 번개치고 배가 요동치는 장면에서 뱃속 아이가 마구 뛰었다고 하더군요. 좋아서 그런건지 놀라서 그런건지. 이거 태아한테 안 좋은 건가. ㅡㅡㅋ 어쨌든 재미난 공연입니다. 발레를 처음 보시는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2막은 용궁신과 궁전에서 아버지와 다시 만나는 신으로 돼 있는데 1막보다는 부드러운 여성성이 드러나는 무대로 꾸며집니다.

자 그럼 이제 춘향 얘기. 처음 보는 공연입니다. 아직 미 완성작이니까..
무대가 열리니 관객들 "와~" 하고 탄성을 지릅니다. 벗꽃 가득한 무대는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 무대위로 파스텔톤 스트랩톱(올해 유행할 거라죠) 입은 무용수들 출현. 갑자기 의아해집니다. "한국이 아니라 유럽이 무대였나?"
그리고 이어지는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 향단과 방자를 통해 '설왕설래' 사랑의 급진전(화끈하네요^^) 둘은 밤을 함께합니다. 밤에 뭐 할게 있겠습니까. 사랑을 나누는데 이거 표현이 상당히 로틱합니다. 이몽룡이 춘향의 윗 옷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나갈 때마다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갑니다. 이어지는 가을과 겨울 정령?들의 무대..그리고 이별...

일단 안무와 무대장치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무용수들의 연기도 좋았고, 화려한 벚꽃과 아무것도 없는 겨울무대(과감히 빈 공간을 연출한 연출진에 박수!)는 100점입니다. 애로틱한 발레는 상업화를 고려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지만 연기 자체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음악과 의상에 대해서는 불만이 남는군요. 음악과 의상이 무용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음악은 지루하고, 튀는 의상은 패션쇼인지 발레를 보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내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조율을 통해 보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하리라 기대합니다. 국립발레단에서도 내년 '춘향'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니 우리나라의 대표 발레단이자 국립과 사립을 대표하는 두 발레단 간의 자존심 대결 펼쳐질겁니다. 유니버설은 배정혜씨 연출, 유병헌씨가 안무를 맡았고, 국립발레단은 러시아의 보리스 에이프만이 안무를 맡기로 했습니다. 두 발레단의 다른 '춘향',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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